에버그린 바이블 미니스트리 사역

바이블필 닷 컴

웹사이트 biblephil.com을 운영하면서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여러가지 신학적 소양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BM은 이런 다양한 신학도구와 사유를 통하여 '재미있게 성경읽기'를 추구하며, 누구나 쉽게 성경을 탐구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만들어갑니다.

기초 신학 강좌

신학의 여러 분과(分科)중 가장 기본적이며 핵심인 주제로 기초 강좌를 개설합니다. 토론과 발표 등을 통하여 신학이 아카데믹한 학문이 아닌 실생활과 신앙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서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 기회의 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온 • 오프라인 성경공부

성경에 관한 엉뚱한 의심과 기발한 발상은 재미있는 질의문답을 만들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통행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토론, 대화는 쌍방향의 의사 교환으로서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런 방법들을 시도하여 온/오프라인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

전도 및 전도지 작업

정기적으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도와 기독교 변증을 합니다. 그리고 현대 문화에 맞게 다양한 온/오프라인 전도 재료들을 연구,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스패니쉬 등 타언어 전도지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기독교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종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 신앙의 출발과 중심은 성경에 있고, 우리는 그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서 다른 종교보다 성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성경이 ‘경전’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은 단순한 고대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여러 시대의 언어와 다양한 문학 장르 속에 녹아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당신을 드러내신 이야기이자, 그분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의 고백과 만남이 담긴 책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들은 것, 본 것, 깨달은 것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기록한 이야기들이라 말할 수 있죠.

그러니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그리고 신앙의 뿌리를 세우고 싶다면 성경 읽기는 가장 기본이 됩니다.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자주 접하다 보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경전이 아니라 삶의 등불이자 내 안의 나침반이 되어줄 겁니다.

솔직히 말해 성경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요즘은 짧고 화려한 영상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떠다니는 시대라, 글자로만 된 책을 읽는 게 버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성경은 처음부터 ‘흥미진진한 스릴러’처럼 펼쳐지지도 않고, 단번에 이해되는 책도 아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다는 거예요. 그게 스릴러든 에세이든 전기(傳記)든, 어떤 맥락이 잡히면 갑자기 내용이 훅 들어오고, 이야기의 결이 느껴지지 않던가요?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은혜 받아야 해!”라는 마음으로 들이밀면 오히려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단순히 ‘감동적인 책’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전승되고 편집되고 해석되어 온,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자체가 가진 시대적 배경, 표현 방식, 장르적 특성이 다 다르거든요.

하나님 말씀은 갑자기 하늘에서 한글 개역성경 버전으로 뚝 떨어져 사람들 손에 주어진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방식, 즉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와 글쓰기 방식 안으로 들어와 기록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그냥 소설책 읽듯이 접근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신앙적으로 가까이 하기 전에 먼저 책으로서 편하게 대하고, 조금씩 맥락을 알아가고, 그 이야기가 왜 이렇게 전해져 왔는지부터 이해하기 시작하면 성경 자체가 가진 깊은 매력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읽을 필요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싸워가며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루한 성경, 나만 이런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성경이 지루하게 느껴진 이유를 ‘내 탓’으로 돌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지루함은 결함이 아니라, 시작점일 뿐이니까요.
우리, 그 시작점에서부터 같이 걸어가 봐요.

물론입니다.
오히려 처음 읽는 분들께는 쉬운 번역, 현대적인 번역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성경은 내용 자체도 깊고 무게감이 있지만, 고어체나 낯선 단어들로 표현된 번역본은 읽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들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니 자연히 손이 멀어지고, “나는 성경과 안 맞나 보다” 하며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죠.

그런 의미에서, 문장이 쉽고 표현이 자연스러운 성경으로 시작하는 건 전혀 ‘신앙적으로 부족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말씀과 친해지는 가장 현명한 길입니다. 처음부터 고전 번역본을 읽으며 고생할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번역본을 읽느냐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느냐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학(神學)’이라고 하면 신학교에서 목회자들이 배우는 어려운 학문, 혹은 논문 쓰는 사람들의 전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믿기만 하면 되지, 신학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신학은 이미 누구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왜 악과 고통이 있을까?”, “기도하면 왜 어떤 건 응답 되고 어떤 건 안 될까?”, “교회는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 판단, 그것이 다 ‘나만의 신학’입니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든 없든, 혹은 논리적으로 글이나 말로 표현해 본 적이 있든 없든 간에, 이미 우리는 하나의 ‘생활 신학’을 갖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신학이 성경 전체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은 파편적인 생각이냐 하는 점입니다. 기초 신학을 배운다는 것은, 거창한 학문을 새로 하나 더 얹는 일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성경과 함께 점검하고 정리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EBM이 말하는 ‘기초 신학’은 헬라어 문법이나 두꺼운 신학책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을 천천히 함께 생각해 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성경에 증언되고 있나, 
인간과 세상, 역사와 고통을 성경은 어떻게 보고 있나,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교회와 신앙생활은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조금씩 틀을 세워 가는 것이 곧 세계관으로서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이 틀이 있어야 신앙도 흔들리지 않고, 성경도 왜곡되지 않게 읽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동시에 여러 시대를 거쳐 전승되고, 다양한 문학 장르와 표현 방식으로 기록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한 구절만 떼어 적용하면, 문자주의에 빠지거나 내 기분에 맞는 구절만 골라 쓰게 되거나 누군가의 해석에만 의존하는 일이 쉽게 생깁니다.

기초 신학은 이런 위험을 막아 주는 안경이자 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읽어야 할지, 어디까지는 인간의 표현이고 어디서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함께 분별하는 기준을 주는 거죠. 

EBM이 기초 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바르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같은 말로 사용합니다. 이 지식의 출발점은 언제나 성경 읽기이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생각하고 묻고, 연결해서 이해하는 훈련까지를 함께 포함합니다.

이미 여러분이 삶 속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들 위에, 조금 더 좋은 설명과 더 넓은 시야를 얹어 주는 작업일 뿐입니다. 머리만 복잡하게 만드는 지식이 아니라, 현실을 버티게 하고,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이해여야 한다고 EBM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기초 신학은 일부 ‘전문가’의 공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신자의 기본기입니다.”
신학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자 삶으로 살아내는 가치관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학과 실제 믿음을 서로 다른 길로 생각합니다.
“신학은 머리로 하는 것, 믿음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식이지요. 그래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대부분은 실제적 믿음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살려주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지 않으면 믿음도 결국 제자리에서 맴돌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믿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지 판단하는 힘은 믿음(beliefs)과 그 믿음을 구성하는 신학적 가치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알라”는 요청을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인식과 분별력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분별력이 있을 때만 우리의 행동, 선택, 결단이 건강하게 자라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신학은 실제적 믿음을 지탱해 주는 토대입니다.

삶에서 옳은 일을 하고 싶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고 싶다면, 그 판단의 기준은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옵니다. 이 지식이 빈약하면 신앙은 쉽게 흔들리고, 감정에 치우치거나 습관적으로만 믿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질수록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이 모이고, 삶의 선택도 한층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신학과 믿음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같이 걸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을 신앙(信仰)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 지식이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우리의 믿음은 그 지식을 살아내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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